눈에다 글씨로 새겨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


chapter 01. 정국에 대한 생각.


총선 끝나고 이야기 한대로 제 생각은 새누리당과 궁물당의 헤처모여 과정이 진행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새누리당 내분이 일어났죠? 이야기한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렇게 보는 이유는 친일파들의 짓거리가 이제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료 / 미디어오늘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와 새누리에서 일어난 공천파동은 어느 개인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동안 이상한 행태를 해도 그게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많은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표면화 되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은 숨겨야 하고 숨긴 거짓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냄새난다고 거적대기를 덮어서 숨겨 놓았던 것이 그 안에서 푹 썩고 발효가 되어서 다른 거적대기를 이중 삼중으로 덮어 놓는다고 해도 그 냄새를 감출 수 없어서 일어난 일이 지난 총선 공천파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새누리당에서 일어난 분열은 그것의 연장선상이라고 봅니다. 


문까, 호베, 알밥들과 종편, 조중동 및 찌라시들은 운동권과 친노, 친문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친일파가 없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을 것이며 통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국에 독재가 없었다면 운동권이 존재했겠습니까? 한국에 종편과 찌라시가 없다면 친노나 친문은 없습니다.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운동권의 잔재도 있을 수 밖에 없고, 종편과 찌라시에서 헛소리를 중단하지 않는 한 친노, 친문도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정말로 친노나 친문을 사라지게 하고 싶다면 헛소리를 중단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 어디에서도 친노나 친문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대선에서 문재인이나 기타 민주세력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독재의 잔재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가장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가 영샘이가 만들어 놓은 광주민중항쟁의 살인마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형을 실행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실시해서 처형시키지 못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역으로 화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둘이 처형되었더라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거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을 처형시키지 않음으로써 대중에게는 광주 민중학살이 별게 아니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고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이 처형되었더라면... 사정은 전혀 달라졌을것입니다.


이 문제 하나로 저는 김대중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이긴 하나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종교적 마인드가 많이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사면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사면 되었을 경우 벌어질 일을 통찰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우리는 지난 과거에서 과오를 찾아내어서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 정신차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베푼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이 현상은 미래에도 반복 될 것입니다.



chapter 02. 중요한 이야기.


우리는 알 수 없이 태어나서 알 수 없이 죽어갑니다. 어제 알던 그 사람이 어느 날 보이지 않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 역시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는 죽기를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혹은 죽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반드시 죽습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은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행동하고 사고한 것의 결과의 집합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분명히 죽을 수 밖에 없다면 면에서 볼 때...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사고의 총 결과물은 죽음이 될 것입니다.


죽음이 눈 앞에 있을 때.. 행동과 사고의 종류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그가 친일파였건.. 그가 민주주의자였건.. 그가 수행자였건.. 그가 거랭뱅이였건.. 부자였건.. 모두 같은 아주 평등한 죽음 앞에서 모든 대차대조표는 영으로 회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런 모든 잡다한 행위들은 우리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자신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자신을 알아야만 합니다. 자신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태어나서 이 모든 사건을 목격하고 문제가 있다고 여기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행복하고자 하며 누가 민주주의를 원하고 누가 바람직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까? 바로 자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신이란 자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당신은 당신이 아닙니다.


눈이 눈을 볼 수는 없습니다. 눈은 자기자신인 눈을 제외한 모든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스스로 그 자신인 눈을 볼 수는 없습니다. 손바닥은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인 손바닥이 손바닥을 감각할 수는 없습니다.


주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객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체가 그 자신인 주체를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인지하는 순간 그것은 객체입니다. 그리고 객체는 <나>가 아닙니다. 어떻게 <자신> 이 자신이 아는 것의 내용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자신을 <무엇> 이라고 여기던.. 혹은 <누구> 라고 여기던 그것은 자신이 아닙니다. 인간의 끝 없는 갈증은 자기자신을 모르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전에는 태어나서 살고 사랑하며 병들고 죽어가는 모든 과정은 무의미해집니다. 대체 누가 태어나서 살고 사랑하며 병들고 죽어간 것입니까? 모든 건 허깨비놀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쓴 바와 같이 자기가 자기를 본다는 것은 혹은 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또한 그러나 이 지구를 걸어갔던 많은 선지식들은 말합니다. "나는 그것이다" 혹은 "나는 깨달았다" 혹은 "당신도 그것이다" 혹은 "나는 신이다" 혹은 "세상 모든 것이 부처다" 등등...


지두.크리슈나무르티에게 그 일이 발생하던 순간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지두.크리슈나무르티가 아픈 몸이 약간 회복되어서 밖으로 나가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길 건너편의 농부라는 것을 알아채게 됩니다. 눈 앞에서 약간의 거리에 있는 돌멩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눈 앞에서 흩날리는 먼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렇게 그는 이 세상을 넘어갔습니다. 메어리 루틴스가 쓴 지두.크리슈나무르티의 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리틀부다' 라는 영화에서 석가가 수행의 끝자락에서 나타난 자기자신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드디어 만났구나 집을 짓는 자여.. 이제 그대는 다시는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대지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러면서 손을 땅에 대자 집 짓는 자는 사라집니다. 집 짓는 자는 우리가 <자기> 라고 알고 있는 마음입니다.


영화 '리틀부다' 의 한장면


논리적으로 모순인 자기자신을 알아내는 일이 명상과 수행의 세계에서 어느 순간 신비함을 가지고 모순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삶의 목적은 완성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삶의 갈증은 해갈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갈증을 해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뒤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고 철저하게 파고 들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은 완전히 풀어헤처졌다가 재조립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혼란은 머리속에서 일어난 단순한 정신작용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정신작용은 실제가 아닌 나타난 혹은 드러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꿈을 꾸고는 그 꿈의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꿈 속 세상은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그는 꿈 속에서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할테지만 실제의 자신은 그 순간 누워서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이 현현되는 과정을 체험한다면 꿈 속의 모든 내용은 그 순간 자기의 생각의 반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했던 이런저런 생각의 영향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꿈이 나타나는 그것 자체가 그 순간 자기의 생각 즉.. 투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낮에도 일을 하면서 혹은 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낮에 하는 생각과 잠을 자면서 하는 생각의 차이는 낮에 하는 생각은 눈 앞에 화면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잠을 자면서 하는 생각은 눈 앞에 현실처럼 화면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의 차이입니다.


즉 모든 생각은 꿈과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낮에 하는 생각은 이성과 논리가 추가될 수 있지만 꿈 속 생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정도이고 이것도 그의 정신 수준에 따라서 꿈 역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꿀 수 있습니다.


'눈에다 글씨로 새겨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 (이 제목은 칼릴 지브란의 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이라는 소 책자에 나오는 이야기의 제목입니다.) 였기를 바라면서... 아래 詩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발견했는데 내용에 약간의 오류가 있어서 임의 수정을 했습니다.



가거라, 영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할테니

생장이 멈추고 죽음을 앞둔 그 지점에서

너의 이름을 지우고 너의 생애도 지우고

순하디 순한 입술로 너 자신을 진술하라.

 

가거라, 나를 감싸 안고 뒹굴던 이름들, 나를

증언하던 날들이여, 결코 뒤돌아보지 못하는 

시간의 길 위를 걸어 가던 육신이여.. 

결코 뒤돌아(回心) 보지 못하는 

과거와 미래라는 집 짓고 살던 마음이여.


까비르


Oliver Shanti - Sacral Nirvana / 올리버 샨티가 까비르의 깨달음을 축하하고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음악


신고
  1. 김중원 2017.03.04 12:18 신고

    더 이상은 집을 짓지 말자.

    남아있는 오두막이
    먼지로 날아가는 그날까지

    부수고 또 부수자
    고통이 즐거워질 때까지

    몸이 부르는대로
    너의 알몸과 내 알몸이
    하나 되는 그날 까지

    온 몸이 전율하는 그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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