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시작은 '탄핵기각 승복 발언' 에서 시작되었다.


이재명과 문재인, 두 사람을 좋게 생각했던 내게 문재인의 '탄핵기각 승복 발언' 은 문재인을 의심하게 하는 시작이었다. 그 때까지 자세하게 보지 않았던.. 아니 아예 보지 않았던 '이승만과 박정희 묘역 참배기사' 를 시작으로 문재인에 대한 검증이 시작이 되었고 문까들의 글을 문재인에 대한 험담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내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재인에 대하여 사실보다는 스스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재인 "박정희 산업화의 공,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서 함께 모시고 기념할 것" 참배 뜻 밝혀


기사로 문재인에 대한 검증을 시작하면서 문재인은 거짓말장이이고, 말바꾸기의 달인이며, 또한 양다리 걸치기의 고수이고, 애매모호함의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니그마가 기사의 검색을 통하여 문재인을 검증하기 시작한 글들 모음


말이 애매모호한 것은 그 자신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판단이라는 말로 애매모호함을 감추는 것은 그가 이리저리 얽혀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그가 말을 수시로 바꾸는 것은 그 자신이 수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을 수시로 하는 것은 그 자신이 거짓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대체 그의 마음상태는 어떠하기에 애매모호하고 말을 수시로 바꾸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가? 


삶의 가치관과 인생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인간들의 공통점.


어려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하고 싶다.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텐데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친구를 험담하려고 쓰는 것은 아니다. 만약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아직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기 바라고, 혹시 살아 있다면 댓글로라도 살아 있다는 표시를 해 준다면 고맙겠다. 그리고 행복함 속에서 살고 있기를 바란다.


당시 나는 생맥주를 파는 통닭집을 운영했는데.. 겉으로 보기에 시간이 많이 나고 그 많은 시간에 수행을 할 요량으로 입에 풀칠만 된다면 만족할 수 있었기에 통닭집을 운영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은 되었다.


어느 날 꽤 큰 준종합 병원에서 사무장을 하고 있는 친구가 놀러 왔다. 예쁜 마누라는 집에다가 처 박아두고 간호사를 옆에 끼고서... 친구가 찾아 온 이유는 목적이 있었으며 그 목적은 내가 통닭집을 때려치우고 그 돈과 자기가 그 동안 모은 돈을 합쳐서 의료기 장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약국에서 파는 각종 알약이나 기타 약들은 수배에서 수십배씩 이문을 남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의료기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의료기 장사에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료기와 의료기를 팔아야만 할 거래처 즉 병원등은 친구가 줄줄이 꿰고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는데 단 한 가지.. 친구는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장사 경험이 있던 내가 같이 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난 내가 운영하던 통닭집을 누군가에게 넘긴 돈을 몽땅 친구에게 줄 의향은 있었지만 장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말했다.

"가게 팔아서 다 줄 테니까 한달에 삼십만원 줘라.. 난 그냥 입에 풀칠만 해도 된다."


친구가 말했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장사할 사람이 필요하단 말야."


내가 말했다.

"장사해서 돈 벌고 싶은 마음 없다. 대체 돈 벌어서 뭐하려고 그러는데?"


친구가 말했다.

"야.. 좀 젊었을 때 벌어 놓아야 하는거 아니냐?"


내가 말했다.

"젊어서 벌어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돈은 그냥 먹고 살만큼 있으면 되는 거지. 그 이상 벌어서 뭐하려고? 그리고 넌 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지 않냐?"


친구가 말했다.

"좀 어느 정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


내가 말했다.

"떵떵거리고 살면 뭐가 달라지는데?"


친구가 말했다.

"돈 많으면 좋은 거 아니냐?"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돈이 많으면 왜 좋으냐고?"


친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돈이 많은 것이 대체 왜 좋다는 말일까? 돈이 많아 진다고 더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더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란 그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먹고 살만큼도 되지 않을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그 이전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저축을 해 놓아도 세상사란 알 수가 없어서 일 순간에 먹고 살만큼만 남기고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이 불안함... 먹고 살만큼만 남기고 모두 사라지고 이후에 먹고 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불안감이 인간을 타락하게 한다. 그러나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이란 그 자신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톨스토이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 고 말하고 있지만 톨스토이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자연의 섭리' 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근본적인 목적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므로써 성취하는 어떤 것(?)이다. 그 어떤 것은 영혼의 진화다. 그리고 그 진화는 모두 이루어져 있다. 이루어져 있는데도 모르는 것은 번잡한 마음 때문이다. 번잡한 마음은 쓸데 없는 욕망에 의한 것이고 쓸데 없는 욕망은 살다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반한다. 이렇게 해서 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성을 갖출 능력이 있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인간이 삶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부재할 때 그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동적으로 물질과 권력을 추종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 그는 '물질과 권력을 추종하는 감각적인 욕망만 남은 이상한 동물' 로 전락한다.


이런 인간의 말은 언제나 왔다리갔다리 애매모호 그리고 거짓말과 말 바꾸기가 연속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자체를 일관되게 해 줄 가늠줄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가늠줄이 가치관과 철학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오입질을 하고 낯 선 여자와 바람이 나는 것을 흉보면서 수군댄다. 혹은 부러워 한다. 혹은 그러한 여자들을 보면서 모여서 수군대며 비난한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관찰해 본 바로는 이 세상의 모든 남자는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원하고 이 세상의 모든 여자는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원한다.


누구라도 바람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고, 외도를 하는 것이 타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타락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멋진 남자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예전에 어떤 기사자료에서 보니 일본의 남편들 중 자기 부인의 정조를 믿는 남편들이 3%도 채 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비율에 차이가 날까? 진실은 나도 모르겠지만...


철학과 가치관이 없는 인간들이 감각적인 동물이 되어서 세상을 차지하고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을 또한 바보들이 지지하고 있는 세상에 갑자기 인생관이 뚜렷한 자기 소신과 철학을 가진 이재명 시장이 나타나자 헐뜯기 바쁘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기분 나쁘다. 이재명 시장은 모든 기득권과 정치권으로부터 왕따 당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재명 시장은 그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들은 살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처럼 보인다.


이재명 시장의 존재는 그들이 인생을 쓸데 없이 낭비하면서 살아 왔으며 자신들을 쓰레기라고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이재명 시장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든 기득권들과 모든 정치인들이 타락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겉 모양이 같아서 같은 테이블에서 토론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감각적 동물과 철학을 가진 인간의 토론이었다. 


동물과 인간의 토론..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 인간이 하늘을 날 때 동물을 땅속을 헤집는다. 인간이 영혼을 말할 때 동물은 먹는 걸 문제 삼는다. 인간이 먹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면 동물은 음식의 맛을 탓한다. 인간이 사랑을 말할 때 동물은 sex를 상상한다.


이것은 이 땅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어디에서 살게 되더라도 겪어야만 하는 숙명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난 모든 토론은 그냥 코미디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의 내밀한 비밀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불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재명 시장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냥 아주 우연히라도 하느님의 손길이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에게까지 닿아서 측은히 여겨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보호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 살아갈 유일한 길은 그 길 외에는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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