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70212100605773?d=y


"어디 남자새끼를 들여!"..내 방인데 조마조마했다

한겨레 : 입력 2017.02.12 10:06 수정 2017.02.12 10:26 


[토요판] 이런 홀로!?

남친과 옥탑방

고시원·원룸 거쳐 마련한 옥탑방에

애인을 이끌고 들어갔다, 그 순간

"혼자 사는 여자가 어디 감히.."

옆방 어르신의 '협박'이 이어졌다


내 집 내 공간에서 섹스도 못하는

20대 혼자인 여성에게

'지옥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늦봄의 달큰함에 흠뻑 취해 처음 애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섰다. 내 손길이 오롯이 묻어 있는 나의 공간에서 마주 누워 있는 애인을 보니 행복했다. 그 안온함이 깨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티이미지뱅크


홀로 산 지 7년쯤 된 ‘20대’ ‘여자’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집을 나오기 전 나에게도 홀로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위해 아등바등 머리를 굴렸다. 작지만 내 취향이 묻어날 아기자기한 방,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독립적인 공간. 애인을 불러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그런 설렘을 꿈꿨다. 물론 그 설렘은 7년 전 첫 독립의 공간이었던 고시원 방문을 여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부모님 집의 화장실만한 방, 몸을 조금만 크게 휘둘러도 근처에 놓인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방, 옆방 누군가의 통화 속 대화가 모두 들릴 정도로 엉망이던 방음. 그런 공간에서 섹스는 고사하고 애인을 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취약한 방음이야 입을 서로 틀어막으면 될 일이었지만 그보다 성인 두 명의 덩치를 누일 공간 따윈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분명 홀로 사는 게 맞는데 홀로 사는 것 같지 않은 홀로살이였다.


고시원을 거쳐, 또 비용을 아끼기 위해 친구와 함께 살던 원룸을 거쳐 2년 전 드디어, 이윽고, 정말로 온전히 홀로 살 수 있는 집을 구했다. 비록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옥탑이었지만, 7년 전 고시원 문을 열기 직전처럼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임의로 두 방으로 나눈 탓에 여전히 방음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곳에도 문제는 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살고 있던 이웃, 바로 집주인의 사돈 되시는 분이었다. 그 어른은 아래층에 사는 딸네 손녀·손자를 돌보기 위해 내 옆방에 살고 있었다.


늦봄의 달큰함에 취할 찰나…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늦봄의 달큰함에 흠뻑 취해 처음 애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선 날이었다. 내 방과 옆방 사이에 놓인 얇은 벽이 웬만한 소리는 모두 통과시켜버린다는 사실은 사돈의 방귀 소리를 들으며 진작에 깨달았다. 이 탓에 애인과 나는 마치 내 집이 아닌 도서관에 있는 것처럼 소곤대야만 했다. 그래도 내 손길이 오롯이 묻어 있는 나의 공간에서 마주 누워 있는 애인을 보니 행복했다. 그래, 그냥 서로 입을 틀어막자. 그럼 된다. 방음이 안 되는 불편함이야 충분히 견디고도 남을 정도였다. 드디어 내 집이, 내 공간이 생겼구나.


그러나 안온함은 곧 깨져버렸다. 사건은 깜빡한 콘돔을 사러 집 문을 열어젖힌 순간 벌어졌다. 문을 열자마자 갑작스레 옆방에서 문이 활짝 열리더니 몹시 흥분한 이웃 어르신이 뛰쳐나왔다. 그러곤 말을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얇은 벽 쪼가리를 통해 애인의 인기척이 흘러들어 갔나 보다. 이웃 어른은 적잖이 흥분하신 탓에 스스로도 말을 버벅거렸다. 조용한 밤 공기를 뚫고 나온 단어들 중 몇 개만 간신히 잡아낼 수 있었다.


“남자새끼”

“혼자 사는 여자”

“어딜 감히”

“들이지 마”

“여자가”


대충 조합하자니 이웃 어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어딜 감히 혼자 사는 여자가 남자새끼를 집에 들이냐.” 이웃 어른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썼으나 뱉으려던 말을 삼키게 할 수는 없었다. 곧 예상 가능했던 협박성 대사가 쏟아져 나왔다.


“너네 엄마도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니?”

“당장 너네 엄마에게 말할 거다.”

“남자새끼 들일 거면 당장 방 빼!”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우두커니 내 집 앞에 서 있었다.


작년에 ‘지옥고’라는 신조어가 혼자 사는 20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다. 지옥고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이르는 줄임말이다. 요즘 신기한 말들을 어찌나 잘들 지어내는지, 지옥고는 20대 주거 현실을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월세와 관리비는 나날이 오르고 공간을 더 잘게 쪼개 방을 지어 올린다. 하다 하다 있는 방을 쪼개기까지 한다. 법에서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 살거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지하 등 집 같지도 않은 집에 혼자 사는 청년이 서울엔 셋 중 하나꼴이란다. 나도 그 지옥고를 거쳐 또 다른 지옥고에 살고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도 여전히 지옥고였나 보다.


사람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잠만 자는 공간도, 먹기만 하는 공간도 아니다. 집은 자고 먹고 쉬고 충전하고 노래도 듣고 섹스도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 공간과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집일 경우에 그러하다. 지옥고인 고시원에서는 옆방 남자의 신음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어야 하고 해도 들지 않는 눅눅한 반지하에서는 밤인지 아침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간을 애인과 함께 맞이해야 한다. 돈이 없어 집 같지 않은 집에 사는 20대에게 모텔비는 더 사치다. 어쩌면 홀로 지옥고에 사는 20대에겐 집이 채워줄 수 있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사치일 테다. 내 돈 내고 사는데도!


여기에 홀로 사는 ‘여자’라면 또다른 눈총이 들러붙는다. 이웃 어른과 일이 터진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다른 입을 통해 듣는 것보다 내가 이실직고하는 것이 모양새가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는 “젊은 남녀 둘이 한방에 있으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당연히 이웃 어른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러셨겠지…. 너가 여자고 아무래도 손녀딸 같으니까…”라며 옆집을 뒤에 업고 당신의 걱정을 표현하셨다. 나는 딱히 하늘이 못 보게 무얼 숨기려 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튼 엄마에겐 그 무언가가 보였나 보다.


“엄마, 손녀딸처럼 생각할 거면 월세를 받질 말든가. 돈을 안 내고 사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고 애인도 데려오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무슨 애인이랑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를 데려오면 안 된다고 계약 때 말한 적도 없는데. 게다가 어쩌다 한번씩 오는데. 여긴 내 공간이고 내 집이야. 엄마한테 집이 가지는 의미만큼, 나도 여기가 내 집이라고. 잠깐 거쳐가는 좁은 곳이라도 나한텐 집이야.”


어쨌거나 늘 내 편이던 엄마는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네가 잘 알아서 하길 믿는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홀로 사는 여자와 그 집에서 자고 가는 애인. 그 사건이 화두에 올랐지만 결국 20대 후반의 딸과 50대 중반의 엄마 사이에서 섹스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정부에서도 공인한 ‘가임기 지도’에 찍힌 점 하난데도 막상 섹스는 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어른들은 30대에 들어섰지만 애인이 없는 언니들에게 “나이 처먹고 시집도 못 가는 노처녀”라고 쪼아댄다. 막상 30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내가 남자를 집에 데려오면 “이러고 다니는 거 엄마가 아냐”고 묻는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억울하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 난리통을 겪고 나니 무언가 갑자기 억울해졌다.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 그런가? 만약 내가 혼자 사는 남자였어도 이웃 어른과 우리 엄마의 반응이 지금과 같았을까. 남자가 여자친구를 들였다고 남자에게 “어딜 감히 혼자 사는 남자가 여자를 집에 들이고! 너네 엄마도 너 이러고 사는 거 아니?”라며 순결과 문란함을 운운했을까. 하긴, 젊은 남자들도 연애 상대로 자취하는 여자가 최고라며 ‘엄지척’ 하지만, 막상 결혼 상대로는 자취 경험 있는 여자는 싫다는데, 나이 많은 어른들이야 오죽하겠나. 여자 혼자 살면서 겪는 온갖 위험으로부터 생존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평판까지 신경써야 할 판이다.


사건은 아래층에 사는 젊은 딸네 부부와 이야기를 하면서 대충 일단락됐다. 다행히 상식적이었던 부부는 친구를 데려오든 애인을 데려오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인사 정도만 해줬음 좋겠다고 했다. 아직도 이웃 어른은 애인이 가끔 올 때마다 조용히 구시렁댄다. 인사만 하고 지청구는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다. 애인이 어쩌다 집에 들르는 날이면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어쨌거나 머리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부대낀다. 마주치진 않을까, 또 한 소리 하진 않을까. 현관문에서 내 공간으로 발을 딛는 그 길에서도, 내 공간에서도, 그리고 다시 내 공간을 나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나는 조마조마하고 부대끼고 불편하다. 언제쯤 내 집의 편안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혜화붙박이장



Close up of four feet in a bed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