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54. 말(words)이 성취하는 바



어느 날 아침, 마하라지의 병세가 여는 때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보였다. 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 지독한 병의 무자비한 결과는 누구든지 명백히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야위고 지쳐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소처럼 그의 자리에 아주 고요히,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뜻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아주 집중하여 들으라고 하면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나를 하나의 현상으로 본다면 "나"를, 나의 본질을 보지 못 한 것입니다. 사실 나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다.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가 개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감각이라는 것은 절대적 존재의 일원성에 상대적 존재의 이원성으로 바꾸는 개념입니다. 현시되지 않으면 잠재적 존재이지만 현시되면 나는 현실적인 존재가 됩니다.


만약 나의 이러한 말들이 진정 무언가를 여러분들께 전달해 준다면, 과연 그것들이 단지 말일 뿐일까요? 물론 내가 여러분들의 성실함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이 아주 먼 곳에서 꽤 많은 돈을 써가며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고 익숙지도 않은 딱딱한 마루바닥에 앉아 정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종류의 수용능력이 없다면, 말들은 단지 아주 제한된 목적밖에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들은 여러분들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울 수도 있을 것이고 지식욕을 자극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자세(특별한 종류의 수용능력)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진정한 의미를 열어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특별한 종류의 수용능력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다시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내 말을 들으러 여기에 왔지만 "당신" 은 완전히 내 말을 듣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당신"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사실, 여러분들이 듣는 것들로부터 뭔가 얻으려고 하는 객체의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면 당신을 위한 나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밖에는 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각(統覺)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세상의 모든 것이 착각이라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 착각 속에 여러분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자, 이제 문제를 알겠습니까? 아니면 문제를 안 것이 아니라 단지 말장난인가요? 여러분이 이 기본적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받아들였을 "경우"대신에 이 말을 쓰겠습니다.- 즉, 뭔가를 들음으로 인해서 좀 더 나은 개체가 되기를 원하는 그런 종류의 관심을 모두 포기하고, 일체를 한 눈에 깨달아 발전하겠다는 희망까지도 모두 포기했을 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습니까? 바로 그 때, 듣는 자는 결코 개입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듣는 상태에서 언어가 그 자신의 미묘한 깊은 속뜻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려있는 마음속에 즉각적으로 확신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이지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들음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마음의 자연적 성향인 분리와 상대적인 속성이 제한되어 말을 객관화하지 않고, 따라서 왜곡 없이 뜻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마음이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 직접적으로 통할 수 있게 되는 때, 즉 그것에 의해서 언어의 합일(Yoga)을 일으키는 때, 그때 그 말의 내면적이고 미묘한 의미가 즉각 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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