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53. 경험의 고통



어느 날 아침, 마하리지는 아주 불편해 보였다. 그의 목구멍이 심하게 아픈 모양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의 고통은 심각할 정도였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고통의 상태 속에서도 침대에 눕지도 않고 아침저녁으로 항상 그의 자리를 지키면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진리를 설명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길게 말할 수는 없었다. 목구멍의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선택된 약간의 단어만을 가지고 핵심적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특별한 이해력을 가지고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마하라지는 설사 자신이 말을 조금 하더라도 참된 구도자라면 올바른 이해력과 깊은 마음으로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니 자신이 길게 말할 수 없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날 아침, 마하라지가 그러한 건강상태 속에서도 아픔을 견디며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들을 맞는 것을 보고 한 여성 방문객이 큰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고통이 죽음보다도 훨씬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라 마하라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Q : 선생님 저는 죽음에 대해서는 두렵지 않지만 고통에 대해서는 심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까요? 고통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죠?


마하라지는 웃고 나서는 말했다.


M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도울 수 없어 유감이군요. 육체적 고통을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불편 중에도 아주 자상하게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댁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통이란 무엇이고 또 누가 고통을 받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항상 문제의 뿌리에 접근해야만 합니다. 


자, 댁에게 묻겠어요. 고통의 경험이 언제 처음 있었나요? 한 백 년쯤 전에 고통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나요? 고통의 경험이 언제 시작되었어요? 깊이 생각해 보세요. 깊이 생각해서 해답이 다른 아무 말도 필요 없이 당신 내면에서 생겨나도록 하세요. 인생이라는 것은 경험의 총채입니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지는 수평적으로 늘어나는 경험이지요. 


그런데 경험이 뭔가요? 그건 외부 세계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감각을 통해서 즐겁다, 마음에 든다, 기분 나쁘다, 싫다 등으로 해석되는 것 아닙니까? 고통이라는 게 따로 있어서 그걸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고통을 경험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경험을 치룰 뿐입니다. 그것을 즐겁다고 하든, 기분 나쁘다고 하든 말입니다. 댁이 궁금해 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겁니다. "누가,(더 가깝게 말해서)무엇이 경험을 겪습니까?"  내가 직접 말해 드리지요. 진정한 "나" 는 어떠한 경험도 겪을 수  없습니다. 경험을 하는 것은 상대적 객체로서의 당신이나 나일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깊이 참구해 봐야 해요. 나는 이 문제를 댁 스스로의 힘으로 풀도록 해야겠어요. 아니 그 보다는 저절로 풀리게 하는 게 더 좋겠지요. 여하튼 계속해 봅시다. 진정한 "나"는 결코 경험을 겪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객체로서의 어떠한 흔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절대적 주체이며 독존이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은 객관적 존재입니다. 더구나 그 객관적 존재는 실체가 없는 가상의 존재이며 의식 안의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세요. 경험을 하는 것은 오직 의식일 뿐입니다. 경험, 즉 자극에 대한 반응은 오직 의식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의식과 경험을 치른 것은 같은 거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댁이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육체라는 것은 몸-마음의 복합체로 경험을 기록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건 댁의 참모습이 아니에요. 댁은 순수한 주체이며 절대적 근본입니다. 그런데 그걸 잊고서 객관적 존재를 자신인 줄로 아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경험을 겪는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속박이 되는 것이지요.


내 말을 이해하겠어요? 나는 영원하고 무한한 절대적 독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험도 알지 못 합니다 경험을 겪을 수도 없고 겪지도 않아요. 다시 말하면 댁은 자신을 감각기관으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그 그릇된 자기동일시가 댁의 고통과 속박의 이유입니다.


감각 기관이 작용할 수 있게 하는 의식 작용이 있는 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삶이 있고 경험이 있고 고통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참나" 로서의 댁은 그 모든 것을 지켜 볼 뿐입니다. 모든 기능은(작용은)본체로서의 나와 객관적 표현이고 모든 지각 있는 존재는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습니다. "참나"는 어떠한 경험도 겪을 수 없고 오직 대상화된 "너"라든가 "나"만이 경험을 겪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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