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47. 찾는 자는 찾아진 자이다.



한 쌍의 유럽인 부부가 약 일 주일간 마하라지를 방문하러 왔다. 그 부부는 수년 동안 베단타학파의 형이상학에 관심을 가져 왔고 그것에 대해 깊게 공부해 왔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거의 좌절에 가까운 피곤함이 보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을 널리 순례를 하면서 수많은 구루로부터 진리의 지침을 찾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그 동안의 진지한 탐구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조금의 확연한 이해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이 마하라지를 방문해서도 계속 그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 방문 역시 쓸데없는 시도가 되어 또 다른 좌절을 맛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싸인 것이리라.


그들은 마하라지의 일상적 질문에 답하여 자신들의 배경을 설명하고는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마하라지는 그런 그들을 몇 분 동안인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M : 내가 당신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당신들 앞에 당신들의 진정한 본성을 비추어 줄 거울을 놓는 것  뿐입니다. 물건을 주듯 손에 쥐어 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직관적으로 명백히 이해되고 깊은 확신으로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다른 깊은 지식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넘어 선 것입니다. 


그것은 갑자기 시간과는 전혀 무관하게 충격처럼 일어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멈춰진 듯한 상태에서, 일체의 완성이 이원성에 앞서서 발생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어나는 절대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한번 이해의 씨앗이 뿌려지면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은 나름대로의 과정을 가지고 진행됩니다. 그러나 깨달음 그 자체는 언제나 순간적입니다.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모든 것이 "저절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유의지적 개인이란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모든 우주의 현시는 우주적인 꿈,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의 소우주적인 꿈입니다. 


모든 사물들은 꿈꾸어진 것들이며 모든 것은 의식 안에 나타나는 모습일 뿐이라 이겁니다. 그것이 잠자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개인적 꿈이든 아니면 일상생활 안에서의 살아있는 꿈이든 간에 그렇습니다. 모든 사물들, 모든 모습들은 의식 안에서 감각체(sen-tent-being)에 의해 꿈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각체들은 꿈꾸어지는 형상인 동시에 꿈꾸는 자입니다. 꿈꾸어지는 형상이 아니면서 꿈만 만들어내는 자는 없습니다. 각 개인이 꾸는 현재의 우주의 꿈은 의식-그것은 특별한 몸. 마음의 상관적 장치, 즉 지각과 이해가 일어나는 매개체 안에 있고 이러한 매개체는 개인적 실체로서 오인 된다-안에 있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꿈이 없으며 그래서 우주도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세계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오직 당신이 분리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당신이 꿈을 꿀 때 꿈속의 사물들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합니다. 꿈속에 등장하는 당신이라는 객체를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발생적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개인적인 꿈속에 있는 모든 객체는 당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삶이라는 꿈속에서도 모든 객체들(모든 개인들, 그들이 다른 이들과 대립한다고 할지라도)은 당신 자신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삶에서의 모든 작용과 행동은 저 스스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행위를 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는)작용이자 꿈이며 시바의 우주적 춤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십시오. 어떤 종류의 꿈이든 반드시 현상적이며, 의식이 깨어있을 때, 말하자면 의식이 자신을 의식할 때 의식에서의 나타남이라는 것을. 의식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못할 때는 깊은 잠에서와 같이 어떤 꿈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단계에서 그 부부의 남편이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의 핵심은 이러했다. 만약에 우리 모두가 결단을 내릴 수도 없고 행동에 대한 독립적 선택도 할 수 없는 단지 꿈꾸어지고 있는 상(相)에 불과하다면 어째서 우리가 속박이나 해탈에 관여하는 것인가? 왜 우리가 마하라지에게 와야 했는가? 그의 질문에 마하라지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옳은 결론에 도달했군요! 만약 당신이 전혀 의심 없이 다음과 같은 것을 확신했다면 당신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이제 내가 하는 말이 당신이 확신한 것인가 한번 들어 보세요. <당신이 자신과 동일시한 객체는 실제로는 실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한 현상, 그래서 단순히 누군가의 의식 안에서 꿈꾸어지고 있는 모습일 따름이며, 그런 까닭으로 이러한 단순한 그림자에게는 해탈이다 속박이다 하는 어떤 질문도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찾아 와 내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맞습니까? 이것이 당신이 확신하는 바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옳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해탈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없는 꿈꾸어진 상(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계속 나를 방문해야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당신은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해탈을 구하는 자가 있는 한 결코 그것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봅시다. 어떠한 행동의 원인이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필요"입니다. 당신은 그럴 필요가 있기에 먹고, 당신의 육체는 그럴 필요가 있기에 배설을 합니다. 또 당신은 나를 방문해서 내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기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이렇듯 필요가 있을 때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 없이도 자연적으로 뒤따릅니다. 그러면 누가 필요를 느낍니까? 물론 의식이 몸-마음의 상관적 장치를 통해서 느낍니다. 만약 당신 스스로가 자신을 그러한 몸-마음의 장치라고 보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참모습을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속박되어 있는 것이며 그래서 해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참모습에 의문을 갖고 그것을 찾고자 하는 자 자신이 바로 찾아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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