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46. 실재함의 부정


한번은 대화중에 마하라지가 이런 말을 했다.



M : 나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육체라는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의식에 부과하고 있는 한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것을 끔찍한 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사실이지 육체가 죽으면 의식은 해방되고 한정된 인격을 넘어 섭니다.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대양으로 녹아들 듯 말입니다.


마하라지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계속 하다가, 한 방문객이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에게 물었다.


M : 무언가 질문이 있는 것 같군요?


질문을 받은 그 방문객은 마음속에 일어난 의문을 정확히 설명할 만한 적당한 말을 생각하지 못해 다소 당황하다가 질문을 하였다.


Q :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숨과 생명력이 육체를 떠나 비인격적 의식과 합일한다. 그리고 죽은 육체는 이런 저런 식으로 파괴되며 창조되었다가 점차 죽는 이 독특한 물리적 형체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만일 선생님의 이러한 말씀이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나 깨달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굳이 깨달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M : 당신은 깨닫지 못한 사람과 깨달은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또 깨닫지 못한 사람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은연 중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 즉 자기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의지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마하라지는 그 방문객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M : 현상적인 우주가 현시의 세계로 드러나는 과정에 과연 그러한 독립적인 실체라는 게 있을까요? 현상계가 현시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의 틀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공간이 없다면 사물이 3차원으로 보이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그리고 또 다른 개념인 시간이 없다면 물체의 모습이 지각될 수 있을까요? 물체가 지각되려면 지각에 필요한-공간이라고 부르는 그 토대 자체가 개념일 뿐이라면, 그 개념의 틀 안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이 개념적이고 그려낸 상(相)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확고하게 이해하십시오. 어떠한 사물일지라도, 설혹 그것들이 분리된 실재로 오인된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독립적 존재일 수도 없고 인격적 의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아무도 죽지 않으며 아무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단지 개념일 뿐이며, 그래서 해탈되어야 할 자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증치 못하면 무지라는 멍에를 쓰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명백히 이해하는 것이 진리의 자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진리는 현실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참된 본성에 관한 흔들리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실재성의 완전한 부정입니다.



PS : 담배가게의 성자를 올리고 있는 중인데 읽으시는 분이 몇몇 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집니다. 


고대에서부터 많은 깨달은 이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깨달은 이들이 신(God)으로 추앙 받았습니다. 아마도 인류가 깨달은 이를 신으로 추앙하던 무지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의 깨달은 이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집단을 조직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쇼 라즈니쉬 같은 분은 조직이 있었지만 '종교'라는 형태라기보다는 수행단체같은 조직이었었고 그 단체는 지금도 있을테죠.


물론 칭하이무상사처럼 거의 종교화 된 경우도 있지만 지두.크리슈나무르티, 유지.크리슈나무르티, 라마 크리슈나, 라마나 마하르쉬, 경허선사, 백봉거사, 대우거사 그리고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그리고 그의 제자인 라메쉬 발세카(Ramesh Balsekar) 등 대부분의 선사들은 종교를 조직하지 않습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의 '담배가게의 성자'와 '아이 앰 댓' 이라는 경전의 특이한 점을 말해보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세상에 무수한 경전이 있지만 불경은 너무 오래되고 세월이 지나는 동안 첨삭이 지속되었던 걸로 보여서 많은 부분들이 실제 석가가 하지 않았던 이야기도 많이 섞여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달마록을 읽어 보아도 그런 현상은 있습니다. 실제 달마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 혹은 달마가 말했지만 그 뜻이 왜곡된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담배가게의 성자' 나 '아이 앰 댓'의 경우 책이 기술된 지가 오래지 않아서 왜곡될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니사르가다타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의 성자들의 책은 모두 비슷하게 진실됩니다. 그러나 자기동일시로 인해서 진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다른 많은 분들은 비유와 은유가 섞여 있어서 이야기가 빙빙 도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니사르가다타의 경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진리에 대해서 곧 바로 치고 들어갑니다. 제가 보기엔 '담배가게의 성자' 와 '아이 앰 댓'은 앞으로도 약 백여년 정도는 가장 탁월한 경전으로 불리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니사르가다타의 언어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심리구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명상계의 복잡하고 난해한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이용해서 이렇게 진리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보고 있고 당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보고 있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당신은 몸과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내용물을 보고 알고 있는 자이지 그 내용물이 될 수는 없으니까..."


니사르가다타의 이야기를 저의 언어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핵심입니다. 

아래 '아이 앰 댓' 에 나오는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께서 말씀하신 원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기고 나머지 모든 의문은 버리라. 결국 그대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확실하지만 "내가 이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대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정진하여 알아보라.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면 먼저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그대가 무엇이 아닌지를 확인하라.


그대는 육신과 느낌이 아니며 생각도 아니고 시간이나 공간도 아니다. 또한 "이것"이라거나 "저것"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대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결코 그대 일 수가 없다. 그대가 지각한다는 사실이 그대가 지각의 내용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대는 오직 부정을 통해서만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라. 이 사실이 더 깊고 뚜렷히 이해될수록 그대는 구도의 여정을 더욱 빨리 끝낼 것이고 그대 자신이 무한의 존재임을 알게 되리라.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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