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45. 오로지 나만이



마하라지는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행동양식이자 도덕률인 윤리에 대해서는 토론하기를 원치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윤리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도록 훈련 받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깊고 상세하게 토론할 의향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하라지는 그러한 주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로 사회의 법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은 고의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도 인정했다. 행동과 도덕에 대한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표준은 제외하더라도, 윤리에 대한 세세한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왜냐하면 행동과 도덕의 표준이나 기준은 시대와 상황을 따라 늘 변하기 때문이다. 


마하라지는 오직 인간의 변하지 않는 참된 본성만을 다루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참된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깨닫는다면 그 나머지 것들은 의미와 중요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모습을 깨달은 이후의 사고와 행동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며 자발적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이원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먹고 살기에 바쁜 일반 사람들이 마하라지의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기란 지극히 어렵다. 새로운 방문객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인생 문제의 핵심으로부터 마하라지가 달아나 있다고 종종 느끼며, 오랜 기간 동안 그의 말을 들어 왔던 사람들도 절대적 입장에서만 말을 하는 마하라지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들은 진리와 그 나머지의 현상적인 것들 사이에서 그 둘의 양분을 모두 흡수하는 것은 어렵다고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그 자신의 본성에 관하여 확연해졌다 하여 어찌 사회의 규범인 도덕, 윤리에 소홀히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마하라지가 모임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자 늘 오는 한 부인이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Q : 선생님, 만일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원자탄을 준비해 자기가 느끼는 대로 사용하다면 그것이 과연 옳고 정당한 일일까요?


M : 원자탄 같은 것은 과거 수백 년 전에는 아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 스스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결론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마하라지는 부인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이같이 대답하고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M : 당신이 말하듯이 깨달은 자가 될 정도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어야 하지 않겠어요? 즉, 모든 현상, 또 현상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일체의 감각체들은 꿈속에 있는 것처럼 허상인, 그런 마음속의 개념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이런 진리를 깊게 이해한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원자탄을 준비할 생각이나 하겠어요?


그러나 이 대답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필요하고 당신이 발견해야만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나"  "너" 그리고 "그" 가 누구인지, 이것 혹은 저것을 자유로운 의지의 기분에 따라 하고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봅니까? 당신은 당신의 몸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졌거나 혹은 마취되었을 때는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육체적 겉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관찰에 의해서 그렇게 느껴지듯 의식 속에 떠오른 것을 감지하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자신에 관한 이해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처럼 환영적이고 덧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관찰하는 것보다 조금 더 리얼하게 보일지라도 그렇습니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그렇다고 여기는 그 견고한 인성(人性)도 단지 의식 속의 나타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 자신에게 내리는 그러한 해석조차도 시시때때로 변할 것이며 지금까지도 변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신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의식 속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활동, 즉 정신적 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신 스스로 한 생각이든 다른 사람의 생각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소위 당신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당신일까요? 단지 정신적 영상에 불과한데? 사람이 그것을 통해서, 불변하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행동양식을 선택할 줄 아는 자율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image)이 있을까요?


상대적이요 현상적으로의 "너" 나  "나" 는 자궁 속에서 수태된 물질적인 점(이 점 안에 모든 현시물 속에 내재하는 의식의 불꽃이 잠재한다)에 불과합니다. 이원성 가운데 있는 그러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상의 모습들에게는 모두 절대적 주관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현상의 기본인 절대적 "나"는 주객(主客)의 양면을 머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체든 객체든 이원성의 범위 안에 있는 그것들은, 그 자체로는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각각의 감각적 존재들은 그 자신의 개념과 그가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와 같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정말 행동하기라도 합니까? 아니면 꼭두각시처럼 외부의 자극에 반응만 합니까? 당신이 조용히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즉각 간파할 것입니다. 당신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그 자체로서는 외관상의 작용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외관상이냐 하면 모든 작용이 의식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깊은 잠이나 마취상태에서처럼 의식이 없다면 이러한 작용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기능 속에서 "우리" 라는 개념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는 이 마야의 희극 속에서 본다면 웃음거리일 따름입니다.


"우리" 는 그것을 벗어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작용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존재는 전체이며 신성하고 본체이며 절대적입니다. 또한 우리의 존재는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으며, 오직 현시된 현상으로서의 이원성 안에서만 지각되고 인지됩니다. "우리" 는 현상적으로는 "나" 와 같은 초월성이고,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재성이기도 합니다. 


오직 진정한 "나" 만이 있을 뿐이고 상대적 나와 다른 사람이란 없습니다. 상대적 현시 속에서 현상은 의식 속에서 나라는 개념을 갖게 되고 모든 대상은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하여 다른 대상을 남으로 인식하는데, 실제로는 상대성이 없는 진정한 "나" 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다시 원자탄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만일 당신이 이와 같은 사실을 정말로 자각했다면 당신이 계속해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본질을 갖고서 악을 행할 엄청난 능력을 소유한 어떤 악인이 존재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또는 "선을 행하는 거대한 능력을 소유한 선의 화신이 있다" 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고집하는 당신이란  "좋음" 과 "나쁨" 이 서로 의존하는 상대개념일 뿐이고, 이원성 안에서의 필연적 나타남이며 전체적 기능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의식의 외관일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실체가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속박" 이며 반야의 전체적 기능과 따로 떨어진 실체란 없다고 믿는 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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