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36. 태어나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다.



마하라지는 다락방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며 그 주제에 대해 생각했음에 틀림없는 듯 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자기 자신을 예리하게 관찰해 볼 시간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는 곧바로 일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 덕이라든가 명상이라든가 하는 것은 썩은 생선 취급이나 받게 됩니다. 스스로 짊어진 일상의 그러한 압박감만 없다면 깨어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아주 흥미로운 일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런 예를 들면, 깊은 잠을 자는 동안의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을 때와 완전히 깨어난 순간 사이의 공백이 있다는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의식이 막 활동을 시작하고 꿈 속의 마음이 곧 끝나게 될 가벼운 꿈을 엮어가는 순간이 그러한 순간입니다.


깨어날 때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첫 번째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말하는 공백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잘 지켜본 적이 있어요? 여러분이 막 깨어났을 때 일어나는 첫번째 일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방안에 있는 사물(대상)들을 보게 된다고 말하기 십상일 겁니다. 


모든 사물은 3차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소위 당신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는 그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식되는 사물에 앞서 존재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사물(대상)들을 인식합니다. 인식의 주체에게는 당연히 대상인 여러분의 몸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식하는 주체가 몸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해집니다. 몸은 단지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인식의 주체, 인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의식입니다.


존재감(the being-ness)또는 '나는 존재한다' 는 의식이 바로 인식자인 것입니다. 잠으로부터 일상생활과 깨어난다는 것은 바로 현존 의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이름을 가진 어느 특정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의식있는 존재로서, 지각 있는 존재에게 지각을 부여하여 갖가지 감각기관들이 작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의식 있는 존재로서의 현존의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적 중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나' 라고 지칭하는 이러한 의식의 자리가 있고, 사회활동을 하며 어떤 이름을 가졌다고 스스로를 잘못 동일시하는 몸-마음의 주체적인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아로서 대변되는 여러분의 드러난 모습인 물리적 형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와 너란 없고 오직 '참 나' 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깊이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자유로워지도록 하십시오. 부디 잘못 오인된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지십시오. 그리고 이해할 마지막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의식은 '이러한 것(such-ness)' 입니다. 그것 또한 육체를 이루고 또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한시적인 것입니다. 연료가 다 타면 불꽃이 없어지듯이 몸이 죽으면 의식도 다하는 것입니다. 사실 의식이란 일정한 시간의 존속입니다. 그것 없이는 대상이 현시되거나 감지 될 정도로 충분한 기간을 존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나' 는 무엇인가?


'나' 란 몸이 존재하는 한은 내면에 있는 존재의식 즉 인식의 근본이며, 몸이 죽으면 일시적인 의식이 그 안으로 사라지는 절대적인 인식입니다. 그리하여 존재의식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본래 태어난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습니다. 모든 모습은 일정 기간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는 '나' 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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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7.01.24 16:32 신고

    사진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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