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게의 성자


25. 우리의 참된 모습



마하라지의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으레 마하라지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경우에는 마하라지가 아주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시작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 마하라지는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한참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뭔가 혼자말로 하고는 질문이 있는듯하면 질문을 받으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특정한 사안에 대해 큰 의문을 품고 질문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럴 경우 이 사람이 맨 됫줄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마하라지는 그들의 심정을 알아채고는 그 사람을 똑 바로 쳐다보며 먼저 말을 건넨다.


어느 날 아침, 여는 때와 같이 마하라지가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한 사람이 재빨리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Q : 마하라지 선생님, 저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무리 해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불이일원론(Advaita) 에 대한 책을 두 권 읽고 그 가르침에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몇몇 스승들을 찾아뵈었는데 그 분들 모두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제게 말씀하시기를,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참 자유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아와 그 밖의 것들로 나누는 이원론을 가진 사람들을  '얽매여 있다'라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또 어떤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이미 모든 사람은 항상 자유로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얽매임' 이란 도대체 있을 수가 없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지금 이 두 가르침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나뉘어진 어떤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 이것은 생각이 아닙니다. 정말 제 가슴 속 깊은 곳에 꽉 박혀서 저를 괴롭히는 문제입니다. 도대체 우리의 참된 모습은 무엇입니까?


마하라지는 질문을 듣는 동안 내내 그 사람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질문이 끝나자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눈을 감은 채로 잠시 침묵했다. 마하라지의 이런 모습을 본 그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자신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하라지가 눈을 떴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마하라지는 그런 그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M : 바로 조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나요?


Q :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M :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는 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요? 깊이 잠들었을 때처럼 의식에서 이루어지던 개념화 작업이 잠시 멈추었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혼란의 범인은 나누고 개념 짓는 의식이라고 여겨지지 않아요? 의식이 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것을 붙잡고는 해결해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 그러한 의식으로 어떻게 참된 모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의 참된 모습은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는 없는 걸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좀 더 해 봅시다. 선생은 "우리의 참된 모습" 이라고 하며 "참 된(really)"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고 만질 수 있을 때 '참 되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보고 만져지는 이 육체가 선생의 '참 된' 모습인가요? 말은 비록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만 가능한 한 정확히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참 되다'라고 하는데, 보고 만져지는 모든 것들은 정신 과정 속에서 인식할 수 있게끔 바뀌어져서야 인식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식된 것들은 인식자의 현재의식에 있는 하나의 허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들이 단지 허상이라면 정말 '참 된' 그 실체(entity)는 무엇일까요?


개념적으로나마 허상 이전의 실체, 감각기관 이전의 근본, 더 나아가 실체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이전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내가 선생에게 "어머니의 뱃속에 들기 이전의 당신은 어떠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선생은 "모릅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인지할 수 없을 때의 그 '나' 가 선생의 참 된 모습입니다. 사실 '나' 는 인지를 가능하게 할 뿐 인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 는 현상 이전의 본체이며 시간과 공간을 너머 있으며 지각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개체적인 나는 항상 상대적이며,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시적 존재에 불과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지각되는 '것' 입니다.


나타나지 않는 본체의 입장에서는, 다시 말해서 참 된 '나' 는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나' 가 우리의 존재를 안다는 그것은 '나' 가 아니라 '나' 에서 비롯된 무언가의 작용입니다.


'나' 는 절대적 독존입니다. 둘로 나누는 것은 의심의 속성일 뿐입니다. 우리를 현상으로 현시(顯示)하는 것이 바로 객관화인데, 이 객관화에는 필연적으로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의 분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 는 결코 객관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객관화의 과정이 어차피 개념화의 범인인 의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자라고 부른 주체나 인식의 대상이라고 부르는 객체가 모두 의식에 투사된 객체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인식하는 객체를 주체로 생각하는 잘못이 저질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개아(個我)' 라는 개념이 환상이나 마야의 힘 같은 것을 통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분리된 개아로 생각하게 되면서 너와 나라는 구분이 점점  뚜렷해지고 강해지면서 자신을 독립된 주체로 확정지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객체들을 분석하고 비판하여 세상을 보는 틀을 만들게 되는데, 이 틀이... 모든 것을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멀다-가깝다 등의 대립되는 상대적 개념으로 보게 하는 것 입니다. 이 틀이 완성되면서 이제는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체계가 성립됩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우주가 하나 탄생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들러붙습니다. 공간은 객관화를 위해서, 시간은 공간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머무는 기간을 측정하기 위한 기억이나 관념에 불과합니다. 만일 그런 관념이 없어진다면, 즉 공간이 없다면 객체를 어디서 볼 수 있겠으며 시간이 없다면 그것들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겠습니까? 자, 이제 선생의 의문이 풀렸습니까?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그 사람은 마하라지의 질문에 불현듯 깨어났다. 그러나 이제까지 들은 말에 완전히 압도되어 한참동안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말이 필요 없는 온전한 들음 속으로 빠져들어가 그저 침묵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하라지의 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M : 선생이 내가 한 말을 잘 이해했다면 소위 구속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 나와 어떠한 해를 끼쳤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완벽하게 알아야 합니다. 모든 현상들은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뿐이며 독존인 실체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나타난 모든 것들은 단지 꿈이라는 무대 위의 등장인물일 뿐입니다. 


그런 허상을 우리들 자신으로 동일시하여 꿈에서 하는 역할을 정말 우리의 역할인 양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착각으로 생긴 이러한 자기동일시로 인해 생긴 헛된 존재에 얽매여 모든 비참함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나라고 하는 허상(what-we-are-not )은 단지 개념일 뿐인데 이 허상으로 참된 '나' 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참된 '나' 와 허상인 나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게 되면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얽매임과 이로 인해 고통 받는 나라는 것이 단지 개념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때 선생의 근본인 참된 '나' 가 모든 현상의 총체로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찾는 자가 바로 찾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에 찾고자 하는 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평안이 선생에게 깃들 것입니다. 아니, 평안이 이제 본래의 자리를 찾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요.


손을 포개고 앉아 있던 그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싸여 그냥 그렇게 울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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