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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친척이 간첩이었다"

프레시안 : 성현석 기자

2016.10.26 11:16:30


[기자의 눈] 최순실 PC 속 기밀 정보, 악용 가능성은 없나


앤서니 블런트 (Anthony Blunt). 영국 런던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였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소장 미술품 감정자(鑑定者)로도 일했다. 여왕으로부터 훈장과 기사 작위도 받았다. 그는 영국 여왕의 친척이었다. 한마디로 금수저 엘리트. 


그리고 그는 소련의 스파이였다. 


영국 여왕의 친척이 소련 간첩, 그리고 대처 총리



정체가 드러난 건, 1963년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재학 시절 '사도(apostle)'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소련에 포섭됐다.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이다. 다양한 영화, 소설, 드라마의 소재가 된 사건이다. 


'5인조' 가운데 한 명인 킴 필비는 영국 첩보기관인 MI6에서 방첩국장을 지냈다. 우리로 치면, 국가정보원에서 간첩 잡는 일을 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그가 간첩이었다. 킴 필비가 소련으로 망명한 게 1963년이다. 그 시기, '케임브리지 5인조'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들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안에서도 똑똑하다고 소문난 인재들이었으며, 한 명을 빼곤 모두 집안이 좋았다. 


그런데 당시 언론에 공개된 건, '4인조'뿐이었다. 영국 왕실이 앤서니 블런트는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여왕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앤서니 블런트가 공개된 건, 1979년이다.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의 결정이었다. 시장주의자였던 대처가 보기에, 앤서니 블런트를 숨긴 결정은 귀족과 관료 등 상류층의 담합 때문이었다. 여왕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국가 안보에 대한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최순실 씨 PC에 4년 간 방치돼 왔던 군사 기밀, 외부 악용 가능성


이번엔 2016년 10월, 한국이다. 여왕의 친구, 어쩌면 의자매가 국가 안보에 긴밀한 정보를 마구 주물렀다. 선거로 뽑혔지만, 사실상 여왕 같았던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최순실 씨 이야기다.  


최 씨의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최근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 접촉이 있었다고 함"이라고 적힌 문서 파일이 발견됐다. 2012년 12월 28일 작성된 문서인데, 그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군사 기밀이다.  


이런 정보가 어쩌다 민간인에게 넘어갔는지, 최 씨는 그걸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대해, 우린 아무 것도 모른다.  


어쩌면 박 대통령도 모를 게다. 최 씨의 개인용 컴퓨터에 4년 동안 군사 기밀이 보관돼 있었다. 최 씨가 그 정보를 다른 누군가와 공유했는지, 박 대통령인들 알고 있을까. 


보안 설정도 없었던 기밀 관리 


게다가 이런 내용이 보도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최 씨는 최고 기밀을 보관하면서 아무런 보안 설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JTBC 측이 최 씨의 컴퓨터를 확보하자마자 쉽게 파일을 열어볼 수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최순실 씨조차 모를 수 있다. 누군가가 최 씨의 컴퓨터를 해킹했다면, 혹은 최 씨의 거처에 드나드는 사람이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복사했다면, 한국의 최고 군사기밀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최 씨인들 알고 있을까. 


최 씨가 현 정부의 숨은 실세라는 건, 오래 전에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최 씨의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꽤 있었을 게다. 굳이 간첩이 아니어도, 정부의 기밀 정보에 이해관계가 걸린 이들은 많다.  


최고의 보안 전문가가 관리하는 정보 시스템이 해커에게 뚫리는 일을 자주 본다. 하물며 평범한 개인이 아무렇게나 관리한 개인용 컴퓨터라면, 어떻겠는가.  


군사 기밀 유출 사태…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일어났다면 


한국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비밀 접촉을 했다는 건, 대단히 민감한 정보다. 한미동맹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 이른바 우파 정부를 주물렀던 최순실 씨가 한미동맹에 해로운 일을 했다. 보수 우파 입장에서 비춰 보면, 북한에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앞에서 영국 여왕의 친척이 소련 간첩이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걸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대입하려는 건 아니다. 요점은 그 다음 대목이다. 여왕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보호 받았던 소련 간첩 앤서니 블런트를 공개한 건, 대처 총리의 결정이었다. 담합을 거부하는 시장주의자라면, 국가 안보를 맨 앞에 놓는 입장이라면, 마땅한 결정이었다. 기자는 대처 총리의 정책에 대해선 비판적이지만, 이런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 


최순실 씨가 지난 4년간 아무렇게나 관리한 국가 기밀이 외부로 새나가서 악용됐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엄정히 따져야 한다. 평소 국가 안보를 강조했던 보수 우파라면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한다. 기본적인 균형은 지켜야 한다. 이런 사태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일어났다면 뭐라고 했을 건가. 


'안보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없다.' 보수 언론 지면에서 자주 보는 문장이다. 한국의 대처를 꿈꾸는 이들이 이런 문장을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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